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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실/역사자료실

갑곶돈대(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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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곶돈대

 

강화도 해안은 조선시대 국방상 아주 중요한 장소로 북방민족의 침입에 대비한 최후의 보루로 생각하여 나름 철저한 방비를 해놓고 있다. 그래서 해안을 따라 많은 돈대와 보, 진을 설치해 놓고 있다. 그 중에서도 육지와 강화사이의 염하를 경계로 하는 해안에 많은 군사시설이 위치하고 있다. 그 중 갑곶돈대는 서울에서 강화로 들어오는 입구에 자리하고 있는 아주 중요한 군사시설로 여겨져왔다. 지금의 갑곶돈대는 70년대에 고증을 통해 복원해 놓은 시설로 구 강화대교 입구에 위치한다.

 

갑곶돈대는원형이나 사각형으로 이루어진 다른 돈대와는 달리 자연지형에 따라 성벽을 쌓아놓고 있다. 염하를 지나가는 선박을 공격하기 위해서 포를 설치해 놓았다. 돈대에는 많은 포를 놓고 있지는 않고 명중률을 높이기 위해 포대를 낮은 지대에 설치해 놓았다.

 

이 돈대는 고려 고종 19년(1232)부터 원종 11년(1270)까지 도읍을 강화도로 옮긴 후 몽고와의 전쟁에서 강화해협을 지키던 중요한 요새로 대포 8문이 배치된 포대이다. 조선 인조22년(1644)에 설치된 제물진(갑곶진)에 소속된 이 돈대는 숙종 5년 (1679)에 축조되었다.

 

고종 3년(1866)년 병인 양요 때 조선 정부가 프랑스인 성직자 9명을 처형한 책임을 물어 강화도를 점령하고자 했던 프랑스 함대가 바로 이곳으로 상륙, 강화성과 문수산성을 점령했다. 동년 10월13일 프랑스군은 삼랑성(정족산성) 전투에서 양헌수 장군의 부대에 패해 패주 하였다. 이때 강화성 내에 있던 강화동종을 가져가려 하였으나 무거워 가져가지 못하고 성내에 있던 외규장각 도서 등을 약탈하고 조선궁전 건물은 불 질렀다. 결국 프랑스 군은 후퇴했으나 이로인해 강화 지방에서는 병인박해라고 불리는 새로운 박해를 받게 되었다. 갑곶성지에서 바라보이는 바다 백사장에서 많은 신자들이 이슬로 사라졌다.

 

갑곶돈대 내에는 조선시대 수군이 바다를 통해 침입하는 왜적의 선박을 포격하던 대포가 전시되어 있다.

 

*돈대는 작은 규모의 보루를 만들고 대포를 배치하여 지키는 곳이다.

*갑곶돈대: 삼국시대 강화를 갑비고차라 부른데서 갑곶이라는 이름이 전해오는 것으로 보기도 하고, 고려때 몽고군이 이곳을 건너려고 하다가 듯을 이루지 못하고 안타까워하며 ‘우리 군사들이 갑옷만 벗어서 바다를 메워도 건너갈 수 있을 텐데’라 한탄했다는 말에서 유래했다는 전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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