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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식혜, 그 기다림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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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미        


식혜만드는 것같이 쉬운 게 또 있을까?
멥쌀을 씻어, 질지않게 고슬고슬하게 밥을 짓는다.
물에 불린 엿기름을 조물조물, 주물럭주물럭 한 다음
그 물을 양푼에 받아둔다.
고운 윗물을 체에 받쳐 밥통에 넣는다.
설탕을 조금 넣은 후 보온 상태로 둔다.

탈곡한 겉보리에 물을 주면 어린 싹이 나온다.
0.5mm - 0.8mm정도 자랐을 때가 당분이 가장 많단다.
그것을 통째 말려서 갈은 것이 바로 엿기름이다.
옆집 할머니네에 가면 겉보리 싹틔우는 걸 쉽게 볼 수 있었다.
싹도 나오고 뿌리도 나는 걸 보면서 어린 날 신기하다고 느꼈다.
싹난 엿기름으로 식혜를 만들면 싹냄새까지 묻어나서 더 고소름하다.

생강을 씻으면서 기다린다.
네시간 즈음 지나면 밥알이 몇 개 두웅둥 떠오른다.
아래에 있는 밥알을 한 국자 퍼서 찬물세례를 시킨다음
그것은 따로 보관해둔다.
밥통의 것을 큰 곰솥에 옮겨붓고 남아있는 엿기름물을 더 넣는다.
그리고 설탕도 더 넣고 생강도 서너쪽 빠뜨린 후 팔팔 끊인다.
참 쉬우면서도 재미있는 게 식혜만드는 과정이다.

때가 되기를 기다려야 한다.
그래야 식혜는 그만의 참맛을 우리에게 선사한다.
서두른다고 결코 빨리 되지 않음을 오늘 식혜한테서 배운다.
혹,'주고 받음'과 '기다림'의 선물은 아닐까 생각했다.
빛깔은 하얗게 맑지 않아도 어린 날 보아왔던 우리네 어머니들이
만들던 방법을 궂이 고집한다.
따로 놔둔 밥알을 동동띄워 한 사발 마신다.
호호 불어 가면서, 아직 뜨거운 그것을.......
엿기름싹 향까지 포올폴 풍기는 그만의 모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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