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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송재농장장님 광명일보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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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어울려 사는 꿈을 싣고 달리는 이송재 기사님
사회에 대한 끊임없는 관심과 참여가 세상을 바꿉니다.
2008-10-06 오후 9:11:25 이효성 기자  ojakkyo@freechal.com

지난 6월 별빛처럼 전국을 수놓았던 촛불의 물결은 광명에서도 출렁이고 있었다.
다종다양(多種多樣)한 사람들이 촛불문화제에 모여들었다. 그리고 분주한 발길과 함성
속에서  어김없이 트럭으로 방송장비와 문화제에 필요한 물품들을 실어 나르며 굳은 일을
 마다하지 않은 사람이 있었다.

광명시민단체의 일이라면 열 길을 마다하지 않고 한걸음에 달려가 소매를 걷어 올리고
내일처럼 도와주시는 이송재 기사님이다.

“어린 학생들이 촛불집회에 모여드는 것을 보면서 한국사회에 대한 희망이 생겼습니다.
발언대에 나와서 또박또박 자신의 생각들을 거침없이 말하는 그들은 우리 세대와 다른
발랄함과 함께 사회적인 관심을 함께 볼 수 있었습니다.”

이송재 기사님이 처음 광명에서 살게 된 것은 1988년이라고 한다. 구로공단의 노동자로서
 신혼살림을 광명에서 시작한 것이다.

1988년은 국민들의 민주화 요구가 봇물처럼 쏟아져 나오면서 각 사업장에서 노동조합이
설립되고, 어용노조는 조합원들의 요구로 민주노조로 변모하고 있을 때였다. 이송재
기사님은 민주노조 운동이 한참일 때 노동조합 조직부장직을 맡아서 열악한 노동자들의
 권익과 직장민주화를 위하여 많은 일을 하였다.

결국에는 노동조합 활동으로 공단 내에서 블랙리스트에 이름을 올리게 되고 여러 회사들을
 전전하다가 IMF를 거치면서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모아둔 돈으로 자영업
을 시작하였으나 실패를 하고 2002년부터 화물차를 운행하고 있다.

지금은 시화공단과 안산지역을 오가면서 공장의 물건을 실어 나르는 일들을 하고 있다.

“광명의 인근지역인 가산동 디지털 단지를 지나다 보면 기륭전자 노동자들이 파업을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많은 노동자들의 피와 땀으로 노동자들의 권한이 많이 향상되었지만
 사회곳곳에 비정규직들이 확산되고 있는 것을 보면 가슴이 아픕니다“

이송재 기사님은 지난 날 노동운동을 치열하게 벌인 것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또한 노동운동의 열매들이 익기도 전에 비정규직이라고 하는 한파에 의해서 훼손되
는 것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고 한다.

이송재 기사님은 현재 광명4동에  위치한 한진 아파트 입주자 대표회의 이사를 맡고 있다.
 지난 2년 동안 동대표를 맡으면서 헌신적으로 봉사를 한 적도 있다.

“우리 사회가 조금씩 진보를 향해 나가는 방법은 개인이 속한 조직에 대한 끊임없는 관심과
 개선을 위한 노력이”라고 말하는 이송재 기사님은 은하철도 999의 기관사처럼 함께 어울려
 사는 꿈을 싣고 세상을 향하여 힘찬 엑셀을 밟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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