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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티 조선’을 남용하지 말라

soil21 2004. 7. 23.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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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digitalmal.com/news/read.php?idxno=9203&rsec=MAIN§ion=MAIN


‘안티 조선’을 남용하지 말라  
월간 말 8월호 데스크 칼럼  


이종태 기자 jtlee@digitalmal.com



지난 반세기 동안 한국 정부에게 휴전선은 ‘어머니 품’과도 같았다. 정치적으로 궁지에 몰리면 허겁지겁 ‘어머니 품’으로 뛰어가 ‘북한의 침략야욕’을 호소했다. 그러면 웬만한 정치 문제는 손쉽게 풀렸다.

21세기 초 집권한 노무현 정권과 그 지지세력에게도 ‘어머니 품’이 있다. 그것은 유감스럽게도 수구 언론 조선일보이다. ‘조선일보 때문’이라는 말이 쓸데없이 너무 난무하고 있다.

지난 7월 초 서프라이즈 당시 대표 서영석씨의 청탁 사건이 불거졌을 때 이 사이트에 접속했던 필자는 ‘안티조선의 남용’이 극에 달했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접속하자마자 ‘조선일보의 비리를 접수받는다’는 팝업창이 떴고 메인 화면은 ‘새로운 안티조선 전술을 공개한다’ 등 조선일보 관련 글로 가득 차 있었다. ‘수구 유사언론매체 조선일보와의 전쟁’이라는 배너도 떠 있었다. 마치 서영석씨 사건이 조선일보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정말 유감스럽게도(?) 이 사건을 가장 먼저 보도한 것은 세계일보였다. 이 기사는 방송을 비롯한 여러 다른 매체에서도 비중 있게 다뤘다. 이 건에 관한 한 조선일보는 세계일보의 기사를 받아 자신들의 정치적 이해에 ‘유용’하게 써먹었을 뿐이다.

조선일보에 대한 이런 식의 대처가 얼마나 자신들(대통령 지지세력)에게 해로운지 느끼려면 조선일보의 반응을 보면 된다. 이 신문사는 서프라이즈의 반응 자체를 기사화해서 ‘서프라이즈의 엉뚱한 전쟁’ ‘서프라이즈의 엉뚱한 분풀이’ 등의 제목으로 쏟아 냈다.

현 정권의 얼굴 중 하나인 유시민 의원도 비슷한 사례에 말려들었다. 서영석씨 사건과 장복심 의원의 자금 배포와 관련, ‘안 그런 사람이 어디 있냐’는 식으로 발언했다가 이 사실이 보도되자 “경계에 실패했다”는 글을 자기 홈페이지에 올린 것이다. “조선일보 기자가 있는 줄 모르고 말했다. 내 실수다. 앞으로는 조선일보 기자가 있는지 확인하고 말하겠다.”

이 같은 유시민 의원의 반응도 아주 ‘섹시’한 제목과 함께 조선일보에 보도되었다. 노무현 대통령도 최근 행정수도 이전에 대한 반대 움직임과 관련, 조선일보를 그 배후로 암시하는 발언을 내놓아 이 신문사를 매우 즐겁게 해주었다.

개혁세력들은 지금 조선일보에게 놀아나고 있다. 조선일보는 개혁세력들의 발언에 전율을 느끼거나 움추러들지 않는다. 오히려 환호성을 내지르고 있다. 그러면서 안티조선을 ‘노무현지지 운동’에 등치시키는 이미지 조작을 벌이고 있다.

집권한 개혁세력은 스스로를 지독한 약자로 간주하는 것 같다. 그러니까 모든 문제를 외부의 ‘적’에게 돌리게 되는 것이다. 어떤 분은 현재의 경제난이 조중동 등 이른바 ‘경제역적’들이 비관적 보도로 경제주체의 심리를 위축시켰기 때문이라는 주장을 펼치고 대통령도 이에 동조하는 발언을 한 적이 있는데 이 정도면 심각한 증세다.

그런데 열린우리당 지지율의 하락과 국정혼란이 정말 조선일보 때문일까. 행정수도 이전 문제를 논란으로 키우는 데 조선일보가 일정한 역할을 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정부는 과연 조선일보 때문에 파병을 결정한 것인가. 혹시 조선일보 때문에 분양원가 공개를 반대했나. 정말 조선일보 때문에 경제가 이 모양이라고 생각하는가. 조선일보에 보도되어 국민들을 허탈하게 만드는 대통령의 발언들은 혹시 조선일보가 조작해 낸 것인가.

이번 호 기사 중 하나인 ‘대통령에게 추천하는 도서’를 기획한 본지 기자는 취재 중 심상찮은 느낌을 자주 받았다고 한다. 70여 명의 설문 대상엔 노무현 대통령지지 성향의 인사들도 다수 포함되어 있었는데, 이분들 중 상당수의 반응이 ‘그를 떠올리기 싫다’ ‘추천하기도 싫다’였던 것이다. ‘조선일보 때문’이라는 주장이 공감대를 얻지 못하고 있는 사례다.

청와대는 차라리 ‘내 탓이오’ 운동을 하기 바란다. 아무리 조선일보를 탓해봤자 2002년 대선 이전과 같은 대중적 공분은 일어나지 않는다. 청와대는 이미 ‘집권자’이기 때문이다. 청와대의 ‘안티조선’은 예전의 영향력을 상실해버린 조선일보를 다시 키워주거나, 한국사회에서 기념비적 ‘반수구세력 연대’를 이뤄냈던 안티조선 운동을 어용으로 이미지화할 뿐이다.

청와대가 할 수 있는 안티조선은 조선일보와 티격태격하며 스스로의 품격을 떨어뜨리는 것이 아니라, 지금 떠나가고 있는 지지층의 의견을 국정에 반영해서 당면 과제들을 해결해나가는 것이다. 끊임없이 당치않은 시비를 거는 조선일보가 밉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성공하는 것이 복수다.



2004년 07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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