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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 통제권을 민중에게 / 국민연금 사태의 진보적 대안

soil21 2004. 7. 23.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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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금 고갈은 새빨간 거짓말,”  
국민연금 통제권을 민중에게 / 국민연금 사태의 진보적 대안  


박권일 기자 kipark@digitalmal.com



정부가 보험료율을 올리고 지급액을 낮추는 ‘국민연금 개혁안’을 내놓았다. 꼬박꼬박 보험료를 내던 국민들에게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소리다. 정부가 내세우는 이유는 기금고갈이다. 2047년 무렵에 연금재정이 바닥난다고 주장한다. 수치까지 제시하면서 을러대니 더욱 그럴 듯 하다. 그러나 이런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사람이 있다. 빈곤해결을 위한 사회연대의 오건호 박사(민주노총 전 정책부장)는 “기금 고갈은커녕 엄청나게 쌓일 국민연금을 어떻게 할 것인가가 문제”라고 말한다. 이게 무슨 말일까? 그는 현행 방식대로 갈 경우 2054년에 국민연금 적립금으로 무려 5,820조가 쌓이게 된다고 지적한다. 심지어 오건호 박사는 국민연금이 “영원히 줄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반세기 안에 한국의 국민연금은 국가예산 3배 규모의 천문학적 액수가 된다. 기금 고갈이 아니라 기금 과다가 문제라는 것이다.

    

▲ 오건호 박사

국민연금폐지 주장의 배경은 시장논리

-당신은 연금폐지를 주장하는 납세자연맹 등을 비판하는데

“나도 그 정서는 이해한다. 우리도 사적인 자리에서는 다 정부 욕한다. 그러나 공적 책임을 가진 시민단체가 공개적인 사회운동을 하면서 그런 얘기를 해서는 안된다. 개인으로서 즉자적 불만을 토로하는 것은 용인할 수 있지만. 네티즌들이 촛불시위에 나설만큼 조직화되고 있지 않은가. 그럼 그들도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물론 한국사회복지제도가 워낙 취약하고 정부의 연금운용방식이나 가입자에 대한 태도 등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그런데 정부를 비판하면서 최종결론이 연금폐지로 가버린다. 여기에는 내가 낸 것 절대로 빼앗기지 않겠다는 시장논리가 배경에 깔려있다. 하지만 국민연금에서는 누군가가 손해봐야 저소득 계층에게 돈이 간다. 상대적으로 우월한 상위계층이 돈을 더 내야한다. 이런 태도는 사회적 연대감이 부족해서라고 생각한다.”

-네티즌들은 ‘노동자 권익 보호한다는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이 왜 우리 편 들어주지 않느냐’고 비판한다. 연금제도에 대해 오해한 측면도 있겠지만, 실은 안티국민연금운동에 나선 상당수가 보험료내기조차 부담스러운 서민층인 것도 사실 아닌가.

“세금의 경우 일정 금액 이하는 다 면세다. 저소득자는 세금을 안낸다. 현행 국민연금의 경우 사회보험이고 직접 돈이 나가니까 반발도 심하다. 보험료가 부담스런 저소득 계층이 분명히 있다. 그런데 이 부분은 따로 부가적인 보완책이 있어야 한다. 국민연금에 강제로 가입시킨 게 문제가 아니고 그 강제성으로 고통받는 사람을 보호하는 사회적 제도가 없다는 점이 문제다. 사정이 그렇다보니 저소득 계층이 가장 혜택보는 국민연금에 대해서 저소득 계층이 가장 반발하는 대단히 역설적 상황이 벌어졌다. 그들에게는 국가가 보험료를 지원해야한다. 예컨대 80만원 이하는 국가가 보험료의 50%를 보조하는 식의 국고보조가 반드시 시행되어야 한다.”

“연금고갈은 영원히 오지 않는다”

-당신은 연금 고갈이 오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정부의 말과는 정반대인데.

“현행 우리나라 연금제도는 수정적립방식이다. 여기서 방점은 ‘적립’에 있다. 가입자의 돈을 계속 쌓아두는 것이다. 지금 시점에서 적립규모를 정해놓고 가면 언젠가는 인구변동에 따라 더 많이 쌓일 수도 줄어들 수도 있는데 인구구성에 맞게 현행법에서 강제로 5년마다 재정추계를 하게 되어있다. 재정추계기간이 유한한 까닭에 언제나 재정추계 최종년도가 재정고갈시점이 된다. 그러나 매 5년마다 급여율과 보험료율이 재조정되므로 현실에서 재정고갈은 영원히 오지 않는다. 대신 천문학적 액수의 기금만 항상 쌓여있게 된다. 재정고갈이 온다는 것은 이번 한번만 연금액과 보험료를 변경하고 앞으로는 안 하겠다는 소리이므로 (그런 상황은 없으므로) 허구인 것이다.”

-그렇다면 정부가 거짓말을 한 것인가

“거짓말이라기보다 미래를 가공한 것이다. 정부도 연금 전문가들도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지금 보험료를 조정하기 위해 고갈을 강조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기금고갈론은 학술적 결과가 아니라 정치적 의지에 따른 하나의 정책 이데올로기일 뿐이다.”

여기서 몇 가지 개념설명이 필요하다. 국민연금의 재정방식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적립방식이고 다른 하나는 부과방식이다. 적립방식은 가입자가 보험료를 내면 이를 적립한 금액과 운용수익을 나중에 돌려받는 것이다. 쉽게 말해서 내 돈을 내가 돌려 받는 것이다. 이에 비해 부과방식은 특정 시기의 근로세대들이 퇴직한 노인세대에게 필요한 연금을 내주는 것이다. 그리고 현재 근로세대들이 퇴직한 이후엔 그때의 근로세대들이 ‘현재 근로세대’들의 연금에 필요한 재원을 납부하면 된다. 그러므로 적립방식엔 돈이 쌓이지만, 부과방식엔 돈이 쌓이지 않고 그때마다 소모된다. 한국의 국민연금은 가입자가 자신의 노후생계를 위해 보험료를 납부하는 ‘적립’방식이지만 일부 연금액은 후세대 보험료에 의존하는 (세대간 부양) 부과방식의 성격도 약간 지니므로 수정적립방식으로 불린다. 당연히 부과방식에 비해 적립방식은 재정안정도가 훨씬 높다.

본인이 부어놓은 돈을 훗날 본인이 타 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정부가 개인의 돈을 유용하지 않는 한 비교적 안전한 셈이다. 오건호 박사는 한국의 국민연금은 적립방식이 기본이므로 재정고갈론은 과장되었다고 주장하는 셈이다.
사실 한국의 국민연금 재정은 세계적으로도 안정성에서 우수한 편에 속한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제도 시행 초기부터 기금의 일부를 쌓아가는 적립방식을 채택했기 때문이다. 돈이 쌓이지 않는 부과방식을 기본으로 채택한 일부 선진국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이다.

더욱이 5년마다 60년 이후를 내다보고, 문제가 있을 경우 40년전에 대책을 마련하도록 규정하는 재정추계 제도는 우리나라에서 처음 시행되었다. 예컨대 기금고갈에 대한 우려는 이 재정추계 과정에서 돌출될 수밖에 없는 사안(쌓인 돈은 언제든 없어지기 마련이니까)에만 언론이 집중한 데 있다고 말할 수도 있다. 한편 오건호 박사는 인구고령화가 진행되는 한 적립방식이건 부과방식이건 장기적 재정적자는 피할 수 없는 일이라 못박는다. 고령화 문제와 관련해서 그가 제시하는 가장 합리적인 방식은 신규가입자들의 평균수명을 추정해서 보험료를 그때그때 산정하는 것이다. 이렇게 추정된 평균수명이 길어질수록 가입자는 젊을 때 부어야할 보험료가 늘어나게 되는 것이다.

기금 운용이 핵심의제로 등장

-이미 국민연금기금 규모가 1백조 원을 넘어섰다. 정부 내에서도 기금운용을 둘러싸고 정부 부처간 갈등과 알력이 엄청나다. 당신은 이런 상황에서 연금기금을 둘러싼 투쟁이 본격화될 것이라 전망한다.

“우리나라 국민연금은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연금이다. 천문학적 적립기금 때문이다. 외국에 비해 도입이 늦은 만큼 제도설계도 상당히 독특한데 가입자가 미래에 받을 돈을 미리 모아두는 방식이 채택된 것이다. 이러한 적립방식에서는 필연적으로 연금기금 운용이 핵심문제로 등장할 수밖에 없다.”

오건호 박사의 주장대로 기금이 고갈되지 않고 천문학적 기금이 향후 수십 년 간 쌓이게 된다면 그 운용방향은 국가경제에 결정적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이 거대기금이 특정 산업의 육성에 집중 투입되었을 경우, 이는 곧바로 한국의 경제구조에 일대 지각변동을 일으킨다. 주식시장에 기금이 투입될 경우도 마찬가지다. 어떻게 활용되든 국민들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게 된다. 따라서 국민연금의 적립액이 쌓여갈수록 기금운용 통제권을 둘러싼 싸움은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오건호 박사는 이 시점에서 진보진영이 국민연금의 진보적 활용을 고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미 세계최대의 단일펀드가 된 한국의 국민연금은 우리나라 공공부문이나 핵심기간산업을 인수하고도 남을 정도로 성장해 있다. 아직은 금융세계화의 도구로 머물러 있지만, 한푼의 자본도 가지지 못한 민중에게 국민연금은 유일하게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는 거대기금이다. 지금은 국민연금 해체를 주장할 때가 아니라, 사회화를 주장할 때이다.”

    



-그렇다면 국민연금의 사회화 방안은 무엇인가.

“크게 세 가지다. 첫 번째는 기금운용의 민주화다. 형식적 기구로 전락한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를 정치적으로 독립시키고 가입자들을 실질적으로 참여시켜야한다. 두 번째는 기초연금(연금을 재산이나 소득과 무관하게 또 보험료 납부기록과 무관하게 ‘균등’지급하는 형태의 제도로 대체로 시민권이 급여의 기준이 된다-편집자)의 도입으로 연금 사각지대 문제를 해소해야 한다는 것이다. 세 번째는 연금투자의 진보적?공공적 활용론이다. 위험성이 높은 각종 대체투자(사모펀드, 벤처투자, 부동산 간접투자 상품 등)를 막고 사회간접자본시설이나 기타 공공부문에 투자되어야한다.”

국민연금운용위, 막강한 권한과 처참한 무능력

-첫 번째로 꼽은 기금운용위원회의 경우 어떤 문제점이 있나.

“기금운용위는 한 마디로 국민연금과 관련한 모든 권한을 갖고 있는 최고 의사결정기구다. 이 위원회에서 국민연금을 100% 주식에 투자하자고 결정할 수도 있다. 그러나 엄청난 권한에 비해 회의체계는 엉터리다. 12인의 가입자 대표들은 분기별 조찬회의 2시간 동안 보건복지부의 기금운용안 초안들을 살펴보고 결정을 내려야한다. 식사시간 한 시간을 빼면 한 시간 동안 국민연금 관련사안을 모두 훑어 보아야한다는 소리다.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스케줄이다. 가입자 대표성 문제도 있다. 농어촌 지역 가입자대표가 아닌 농협과 수협이 농어민 대표로 참여하고 있고, 특수전문직인 공인회계사협회가 도시지역 가입자 대표로 참가하고 있다. 경영계 대표는 경총, 전경련 등이 참가한다.”

-가입자 대표가 그래도 기금운용위의 다수인데, 마음만 먹으면 정부를 견제할 수 있지 않은가

“참여연대나 양대노총은 그래도 열심히 견제하려고 노력하지만, 펀드매니징은 대단히 전문적인 분야이기 때문에 자료 자체에 대한 해독조차 어려운 상황이다. 나머지 가입자 대표는 출석률도 낮고 적극적이지도 않다. 국민연금이 갖는 중요성에 비해 너무나 허술하게 운영되고 있는 것이다. 기금운용위에서 국민들을 위한 실질적 논의가 가능하려면 전문가를 포함한 상설기구를 만들어서 가입자들이 보다 능동적으로 국민연금 운용에 개입해야한다. 연금운용의 민주화는 기금운용위의 개혁에 달려있다. 또한 정치적으로 완전히 독립되고 가입자들의 실질적 결정권을 강화하는 기구를 만드는 것도 검토해야 한다.”

“한나라당과 정부 식 기초연금제 도입에는 반대”

-두번째로 기초연금제 도입을 주장하는데

“정부나 학계에서도 검토해온 방안이다. 모든 사회구성원들에게 기본적 노후생계비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기초연금제 도입이 필수적이다. 보험료를 내지 못하는 취약계층에 대한 국고보조가 실시되어야 한다.”

-기초연금, 즉 소득에 상관없이 국민 모두에게 균등하게 적용되는 연금과 소득비례연금의 이원화된 연금구조를 주장하는 것인가. 그렇다면 대선 때 한나라당 주장과 골격이 같은데

“우리의 주장과 한나라당의 주장은 기초연금 도입만 같다. 즉 우리의 안은 소득비례연금과 기초연금으로 완전분리하는 이원화는 아니다. 한나라당 얘기는 예컨대 한 사람에게 지급되는 60%의 연금액 중 20%는 기초연금, 20%는 소득비례 국민연금, 20%는 기업연금 등으로 분할하는 것이다. 이럴 경우 소득비례 국민연금 내부에서 소득재분배 효과는 없어진다. 한나라당과 정부는 이런 방식을 원한다. 그런데 우리가 주장하는 기초연금은 현행 국민연금에 있는 소득재분배 효과를 건드리지 않은 상태에서 다시 소득재분배 기능이 있는 기초연금을 도입하자는 것이다. 균등과 비례의 정도를 어떻게 하는지는 논의 가능하지만 한나라당처럼 20 대 20 대 20 으로 하는 것은 수용할 수 없다. 이렇듯 기초연금도입은 설계를 어떻게 하냐에 따라 굉장히 여러 가지 모델이 나온다. 우리의 원칙은 연금제도가 필요함에도 적용받지 못하는 광범위한 계층, 즉 사각지대를 없애자는 것이고, 기초연금을 도입하되 기존의 소득재분배 효과를 침해하지 않는 수준에서 하자는 것이다.”

-기초연금 부문에 국고보조해야 한다면 국고보조의 규모는 어느 정도여야 하나. 소득비례연금이야 자기 돈 내고 미래에 다시 받는 것이니 다른 얘기라 치고, 기초연금은 결국 국가재정에서 나오는 것 아닌가
“8조에서 12조 가량의 엄청난 돈이 든다. 이후에는 더 커질 것이다. 정부재정규모, 공적연금의 비중, 출산율 등 모든 것을 고려해야 한다. 결국 부유계층에게서 직접세를 더 걷고 국방비를 줄여야 한다고 본다.”

국민연금의 운용논의,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연기금의 공공적?진보적 활용론은 듣기는 좋은데 구체적인 실현방식은 불투명하다. 수익성 낮은 공공부문에 투자해서 연금을 운용하는 게 가능한가. 정부개혁안을 보면 수익성제고와 주식시장 부양을 위해 기존의 채권시장 중심의 투자에서 주식시장 투자비중을 늘리겠다는 내용이다. 민주노총의 개혁안을 보면 주식시장 투자에 반대하고 국가기간산업에 투자하거나 기존 국채시장에 투자하는 등 수익성을 별로 고려하지 않은 것 같다.

“연기금이 주식시장에 들어가는 것에 대해 국민들의 반대여론이 높다. 삼성생명도 주식투자 비중이 10%가 안된다. 기관투자가들도 회피한다. 이미 경험적으로 한국주식시장의 불안정성을 느꼈기 때문이다. 공공부문 투자가 수익성이 낮아도 다른 공공적 이익이 있다면 계량화 가 가능하다. 일례로 공공임대주택 건설에 이 자금이 들어가면 수익성이 시장에서의 펀드매니징보다 2%낮더라도 서민들한테 주거를 공급하고 투기화된 부동산 시장을 통제함으로써 지가를 안정화시키는 등 사회간접적 효과가 있을 것이다. 또한 대단히 조심스럽긴 하지만 연금의 주식투자도 전적으로 배제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핵심기간 산업이나 삼성전자 등에 투자하는 것도 좋다고 본다. 물론 전제가 있다. 기금운용주체의 민주화, 외국투기자본에 대한 확실한 규제책이 선행되어야한다.”

오건호 박사는 “우선 6월 국회에 걸려있는 정부의 국민연금 개혁안을 막아내는 게 급선무”라고 지적한다. 그는 “최근 정부의 연금개혁안을 보면 기금운용위의 권한을 대폭 축소하는 등 기금운용권을 완전히 자신들이 장악하려 시도하고 있다. 한시가 급한 상황이다.”라고 말하면서 진보진영이 국민연금에 대해 진보적 대안을 공론화하고 구체화시켜야한다고 역설했다. 국민연금의 규모가 거대해질수록 이를 둘러싼 투쟁은 거세질 전망이다. 국내에서 국민연금의 운용처가 곧 포화상태에 놓인다는 건 객관적 사실이다. 진보진영에서 연기금의 장기적 운용방향을 시급히 논의해야하는 또 하나의 이유다.



2004년 07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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