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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경복궁답사기 미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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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오전에 경복궁 답사를 갔다.
날이 바람이 불어 체감온도가 차다.
영어로 안내하는분은 까만 두루마기에 머리도 동그랗게 틀어올려 추워보이지도 않고 단아한 아름다움을 뽑내고 계신데
우리를 안내하는 선생님은 한쪽눈이 빨갛게 충혈되고 작은 몸매에 얇은 한복을 입고 달달 떠는 모습이 안쓰럽기 짝이 없다.
경복궁은 최초의 법궁이고 북쪽에 위치해 있어 북궐이라고도 한다고.
법궁은 가족이 같이 기거를 하는 궁을 말한다.
경복이란 말은 조선의 개국공신 정도전이 시경의 군자경복(君子慶福 ) 이란 말에서 따왔는데 '덕을 갖춘 군자는 큰 복을 받는다'
란 뜻인데 경복궁 안에 사시는 임금은 큰 덕을 갖추어야 한다는 무언의 뜻이 숨어 있단다. (굵은 글씨는 한국의미 특강의 오주석 선생님의 해석)
1395년에 낙성을 하였고 (1392조선 시작)1592년 임진왜란때 전소가 되어 폐허가 되었다.
그후 270년이 흐른 고종 4년 1867 중건을 하였고 1895년 을미사변이 일어나 명성왕후가 건청궁에서 시해를 당하셨다는 말씀을
해주시며 경복궁에 대한 설명을 시작하셨다.
경복궁의 중문인 흥례문을 지나 중중문인 근정물 사이에 영제교가 있는데 다리 밑으로 북악산에서 발원하여 서쪽 담장을 지나 청계천으로 흘러가는 금천이 흐르는데 임금님을 뵙기 전에 신하가 몸을 씻고 정갈한 마음으로 정치에 임하란 뜻이 담겨 있단다.
그리고 물길을 타고 오는 잡귀를 내쫓는 천록이 조각되어 있어 부리부리한 눈으로 물을 바라보고 있었다.
다리위의 길은 3칸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가운데 길은 임금님만이 다닐수 있는 어도로 더 놃고 넓었다.
이를 어기는 자는 장 100대를 맞았단다.

근정문에서 근정전으로 오르는 월대 계단에는 답도가 있는데 봉황한쌍이 새겨져 있는데 봉황은 성군이 나타나 태평성대일때 나타난단다는 상상속의 새이다.
답도 좌우로는 해태상이 있는데 해태는 정의롭지 못한자를 가려내어 뿔로 공격을 한다는 상상속의 동물이다.
근정전은 공식적인 중요한 나랏일을 하는곳이란다.
왕의즉의식,  왕가결혼식, 세자책봉식, 사신접견등을 하였고 근정전의 뜻은 부지런히 나라를 다스리라는 뜻이라고. 
근정전 앞뜰에는 품계석이 있는데 문반은 동쪽에 무반은 서쪽에 있다.
품계석은 정조때 만들어졌다네요.
근정전앞뜰에 얇은 돌이 깔려 있는데 이를 박석이라고 한다. 아주 소박하게 최소한으로 돌을 다듬어 놓은데는
태양빛이 반사되도 눈이 부시지 않게 하고 가죽신을 신은 대신들이 안 미끄러워지게 하려는 깊은 뜻이 있었다고.
근정전안에는 용상(임금님이 앉는 의자)이 있고 용상뒤에는 일월오악도 (한국의 미 특강의 저자 오주석님은 일월오봉병이라 부름) 가 있었다.
임금이 있는 곳이면 어디나 일월오악도가 있다고.
밖으로 외출을 할때도 조그만 일월오악도를 준비해서 가지고 다녔고 임금의 초상 (어진이라고도 한다)이 있는 곳에도 일월오악도가 있다.
이태조의 어진이 모셔진 전주의 경기전에도 일월오악도가 있다.
해는 왕을 달은 왕비를, 봉우리 다섯개는 한반도서의 영토를 상징하고, 소나무와 폭포는 영원한 지속성을 상징한단다.
근정전의 왼쪽천장에 황용 두마리의 그림이 있는데 발톱이 7개가 있는데 음양 오행, 천지인 사계절 자연과의 조화를 뜻한다고 한다.
근정전을 지나면 사정전이 나오는데 요즘으로 말하면 청와대의 대통령 집무실이라고 말할수 있다네요.
공부도 하고 조회도 하고 그랬답니다.
임금의 일거수 일투족을 사관이 일일이 기록을 하였는데 유네스코 세계문화기록유산으로 조선왕조실록이 지정되었다.
사정전의 단청은  천연 단청을 사용하였는데 140년이 되었다고.
궁궐처마에 새둥지를 틀수 없게 새그물을 쳐놓았는데 이름을 부시라고 한단다.
만약 새둥지가있다면 새를 잡아먹으려고 뱀이 둥지에 들어갈수도 있기 때문에 궁궐에서 좋은일만 일어나길 원하고 살생이 일어나길 원하지 않기 때문에 문제의 씨앗을 아예 차단한것이란다.
경회루에서는 공식적인 연회, 외국 사신들을 위한 연회, 과거시험을 위한 활쏘기와 기우제를 드렸다고 한다.
1층 화강암 기둥이48개인데 안의 기둥은 둥글고 밖의 기둥은 네모진데 이는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지다는 뜻이라고.
청동으로 만든 용2마리를 빠뜨려 화마로부터 보호함을 기원하였다고.
옛날엔 경회루를 마음대로 들어갈볼수가 없었는데 정9품이었던 구종직이 숙직을 하다가 경회루의 야경이 뛰어나다는 
말이 생각나 말단의 관리가 들어갈수 없는 곳임에도 들어가서 거닐다가 성종임금님의 눈에 띄었다.
왕이 이유를 묻고는 노래를 할줄 아느냐고 말하니 격앙가를 불렀단다.
경전을 아느냐고 또 물으니 춘추를 외웠단다. 
성종임금이 다음날 보자하고 정9품에서 5계단을 승진시켜 종5품으로 임명을 하였는데 이를 반대하는 여론이
분분하였는데 신하들을 전부 모아놓고 경전을 외우게 하였는데 몇줄을 못가 막혔단다.
구종직에게 경전을 다시 외우게 하였더니 막힘이 없어 반대하던 여론이 잠잠해졌단다.
강령전은 침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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