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자유게시판

개밥그릇의 경전 - 부처님오신날에

320x100

어쩌면 이렇게도

불경스런 잡념들을 싹싹 핥아서

깨끗이 비워놨을까요

볕 좋은 절집 뜨락에

가부좌 튼 개밥그릇 하나

고요히 반짝입니다

 

단단하게 박힌

금강(金剛)말뚝에 묶여 무심히

먼 산을 바라보다가 어슬렁 일어나

앞발로 굴리고 밟고

으그렁으그렁 물어뜯다가

끌어안고 뒹굴다 찌그러진

 

어느 경지에 이르면

저렇게 마음대로 제 밥그릇을

가지고 놀 수 있을까요

 

테두리에

잘근잘근 씹어 외운

이빨 경전이 시리게 촘촘히

박혀있는, 그 경전

꼼꼼히 읽어 내려가다 보면

어느 대목에선가

할 일 없으면

가서 '밥그릇이나 씻어라'* 그러는


-이덕규-
320x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