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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저 앞산 나뭇잎들이 반짝반짝 뒤집어지는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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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저 앞산 나뭇잎들이 반짝반짝 뒤집어지는 이유는

갓 깨어난 새들과 시소 놀이 해봤냐고

어린 나뭇가지들이 우쭐거리기 때문이다

잠든 새들 깨우지 않으려

이 악문채 새벽바람 맞아본 적 있냐고

젊은 것들이 어깨를 으쓱거리기 때문이다

겨울잠 자는 것들과는 술래잡기하지 말라고

굴참나무들이 몇 달 째 구시렁거리기 때문이다


지금 저 앞산 나뭇잎들이 반짝반짝 뒤집어지는 이유는


고물고물 애벌레들 발가락에 간지러워 죽겠는데


꽃까지 피었으니 벌 나비들의 긴 혀를 어쩌나


이러다 가을 되면 겨드랑이 찢어지는 것 아니냐며


철부지들이 열매 걱정을 하기 때문이다, 그 허튼 한숨 소리에


다람쥐며 청설모들이 입천장 내보이며 깔깔거리기 때문이다


딱다구리한테 열 번도 더 당하곤

목젖에 새알이 걸려 휘파람이 샌다고

틀니를 뺏다 꼈다 하는 늙다리 소나무 때문이다


딱따구리는 키스를 너무 좋아해, 나에테깨나 두른


고목들이 삭정이 부러지게 장단을 놓기 때문이다


금 저 앞산 나뭇잎들이 반짝반짝 뒤집어지는 이유는

새와 벌레들에게 수만 번 잠자리를 내어주고

사람의 집으로 끌려간 기둥이며 장작들, 그 폐가에

새로 들어온 인생 하나가 마루를 닦고 있기 때문이다

젊어 어깃장으로 들쳐 멘 속울음의 나이테를

제 삭정이로 어루만지고 있기 때문이다


걸레를 쥔 사람의 손을 새 발가락인 줄 잘못 알고


눈빛 반짝이는 문지방이며 마루의 나뭇결들


그걸 나뭇잎들이 손뼉 치며 흉내 내기 때문이다


도대체 몇 년 만에 만나는 굴뚝 연기냐고


아무것도 모르는 어깨 너머 뒷산들이


폐광의 옆구리를 들쑤시기 때문이다



좌충우돌, 폐광 속 박쥐들이



날아다니기 때문이다




---이정록 [의자] 중 제목이 제일 길었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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